부유해지기 전에 늙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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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골목, 무료 급식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며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굽은 등. 한국에서 노년의 빈곤은 거리 위에 서글프도록 또렷하게 드러난다. 반면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풍경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 기묘한 역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처분가능소득 기준 30%대 후반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최고 수준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원인이다. 북유럽의 복지 국가들은 강력한 공적 연금과 사회 보장 제도를 통해 노인 빈곤율을 원래보다 60~70% 이상 극적으로 감소시킨다. 반면 한국의 공적 제도가 빈곤율을 낮추는 효과는 20%포인트 안팎에 불과하다. 한국 노인이 가난한 것은 사회 전체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노후를 떠받칠 제도가 채 성숙하기도 전에 고령화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산업 구조가 급변하며 중고령층이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전통적인 가족 부양 규범이 무너지는 동안, 국가가 그 빈자리를 온전히 메우지 못했다. 가족이 떠나간 자리에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했던 결과다. 인도네시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이곳은 여전히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유대가 끈끈하다. 노부모를 자녀가 끝까지 모시는 것을 당연한 도리이자 미덕으로 여긴다. 덕분에 노년의 가난은 가구 안으로 유연하게 흡수되어 거리 위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청년층 자녀 가구가 경제적 위기에 빠지거나, 급격한 도시화로 핵가족화가 진행되어 부양의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노인 가구는 물론 가족 전체가 순식간에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이 이미 길거리에 '드러난 위기'라면, 인도네시아의 상황은 시한폭탄처럼 숨겨진 '잠복한 위기'인 셈이다. 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기구 전문가들이 개발도상국을 향해 가장 무겁게 던지는 경고가 있다. 바로 "부유해지기 전에 늙는다(Getting old before getting rich)"는 말이다. 한국은 경제 성장을 어느 정도 이룬 뒤에 고령화 사회를 맞이했지만, 인도네시아는 국민 소득이 충분히 오르기도 전에 초고령화라는 거대한 파도를 마주하고 있다. 제도를 정비하고 안전망을 구축할 재정적 여유를 확보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뜻이다. 결국 두 나라는 모양새만 다를 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가족이 더는 노년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을 때,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한국의 오늘날 모습은 인도네시아의 내일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자, 지금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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